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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LIFE MISSION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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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자료

         성경적인 복의 바른 이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복'을 무척 좋아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리스도인들 역시 이러한 기복(祈福) 현상으로부터 제외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식의 마술 공식(magic formula)이 난무하는 일이나, 그리스도인의 가정과 사업장에 걸려 있는 장식들이 한결같이 복의 희구를 자극하는 성구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을 보아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로 '성경적인 복' 에 대한 왜곡된 인식 때문입니다. 이에 논의된 여러 의견을 종합하여 '성경적인 복'의 바른 이해에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2. 복의 정의
1) 사전적인 복 : '삶에서 누리는 좋고 만족한 현상과 거기서 얻는 기쁨과 즐거움. 가장 좋은 운수'를 말한다.
2) 동양적인 복 : '운수', '행운'이라는 용어들에 '복'이라는 관념을 부여하여 사용하여 운명론적임이며, 자신의 선한 행위의 공덕에 대한 보상 물로 보는 인과응보의 사상을 갖고 있다.
3) 서양적인 복 : '복'이 행운의 여신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측면이 있는가 하면, 인간 자신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결과라고 생각하는 인본주의적 발상을 하기도 한다.  
4) 세상적인 복 : 일반적으로 오복으로 이해되고 있다. 오복은 두 가지가 있다. 지도계층에서는 수(壽,오래 삶)·부(富,넉넉함)·강녕(康寧,건강함)·유호덕(有好德,덕을 베풂)·고종명(考終命,명대로 살다가 편히 죽음)을 말하고, 서민계층은 수(壽,오래 삶)·부(富,넉넉함)·귀(貴,귀하게 됨)·강녕(康寧,건강함)·자손중다(子孫衆多,자손이 많음)를 바라고 있다. 모두 세상의 액에서 벗어나고자 하거나, 세상의 안녕을 바라는 것이다.
5) 성경적인 복 : 히브리어 '베라카'는 '좋은 것'(good)을 뜻하는데, 주로 물질적 은택(material good)을 의미한다. 희랍어 '율로기아'(eujlogiva)는 주로 복음이 가져다주는 영적 선을 의미하지만, 때로 물질적 유익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에 비해 '마카리오스'(makavrio)는 복된 상태를 묘사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복은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선의(善意, good will)로서 영적·물질적 은택을 통하여 나타나고 또 그로 인해 향유하는 행복한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3. '성경적인 복'의 구분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된 인간에게 베푸시는 '복'을 성경에서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그 중 하나는 일반 은총에 속한 복이고, 다른 하나는 특별 은총에 속한 복이다.  이들 구분은 상대적인 구분이라기 보다는 종속적인 구분으로써 일반 은총에 속한 복은 어디까지나 특별 은총에 속한 복을 보조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1) 일반 은총에 속한 복  
이 복은 택자나 불택자, 또는 신자나 불신자, 그리고 선한 자나 악한자 모두에게 구별 없이 뜻을 따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일반 은총의 선물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세적이고 일반적이기 때문에 신자들만 현세에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불신자들도 함께 누리게 되는 것이며, 자연 만물의 아름다운 혜택도 신. 불신간에 함께 누리게 되는 것이다(창39:5).

2) 특별 은총에 속한 복  
이 복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된 성도에게만 기쁘신 뜻을 따라 베풀어주시는 특별 은총의 선물을 말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세적이고 신령적이며 특수적이기 때문에 신자나 불신자가 구별 없이 받는 것이 아니고 택함 받은 자만이 받아 누리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복'은 바로 이 같은 특별 은총에 속한 '신령한 복'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엡1:3).

4. '성경적인 복'의 종류
성경에 '복'이란 낱말이 구약에 283회, 신약에 57회, 모두 340회 나온다. '복'이란 낱말의 쓰임을 살펴보면 복의 내용을 알 수 있는데 그 내용을 대별한 말씀이 창세기 49장 25절 말씀이다.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창49:25).  
1) 위로 하늘의 복 : 신령한 복이며 믿음의 복이다(엡1:3).
2) 아래로 원천의 복 : 지하에서 샘솟는 물의 근원을 얻는 복이며, 생명의 복이다(사44:3).
3)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 : 많은 자손을 가리키며,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이고(창9:1,7), 기업의 복이다(시127:3).

5. '성경적인 복'의 특성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특별 은총에 속한 복은, 주권성, 언약성, 은혜성, 영원성 등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1) 주권성
성경적인 복은 인간 편에서의 필요에 따른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 베풀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편에서 주시는 복은 일방적일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서 아무런 조건도 요구하지 않으신다. 따라서 누구나 복을 받고 싶다고 받는 것도 아니고, 받기 싫다고 받아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적 섭리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다(창5:2).
2) 언약성
성경적인 복은 하나님의 언약의 내용을 가르친다. 그리고 언약이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실 복에 대한 약속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이미 주시기로 작정해 놓으신 복, 즉 언약을 이루어 주시기로 구하는 것이 기도요, 축복, 곧 복을 비는 것이다. 따라서 축복은 기도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적인 기도는 이방 종교나 무속신앙자들처럼 무엇이든지 자기 자신의 욕심대로 소원 성취를 비는 불공이나 염불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마6:31-33)
3) 은혜성
이방 종교나 무속 신앙자들은 인과응보의 관념에 의하여 선한 행동의 인간 공덕에 따라 복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 적인 복은, 인간의 행동과 관계없이 거저 주시는 은혜성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실 때도 아무런 조건이 없이 거져 은혜로 허락하신 것이다.  따라서, 성경적인 복은 행위의 대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신33:16).
4) 영원성
일반 은총에 속한 복은 현세적이고 육체적이기 때문에 영원성이 있을 수 없으나 특별 은총에 속한 복은 영원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성경에서 약속하고 있는 복은 일반 은총에 속한 현세적이고 유형적인 것이 아니고 내세적이고 신령적인 것으로서 영원성을 가진 특별 은총에 속한 복인 것이다. 이 복은 현세에서도 부분적으로 누리기도 하지만 영원한 세계에서 완전하게 누릴 수 있는 복을 말한다(대상17:27).

6. '구약시대의 복'과 '신약시대의 복'의 차이
1) 구약시대의 복
주로 물질적·현실적·가시적인 것이 강하게 부각되고 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선의'[내용]와 '물질적 은택'[형식]이 본질적으로 연접되어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의[내용]는 반드시 물질적 은택[형식]을 통해 그 의미가 살아나도록 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물질적 은택(자녀의 생산, 소유물의 증식, 민족의 번성, 영토의 획득)을 한껏 누렸고, 그렇게 향유하는 물질적 은택은 그가 하나님의 선의를 누리고 있다는 표시가 되었다. 이것은 아브라함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해당되는 신적 작동 원리였다(창12:1-3).

2) 신약시대의 복
초자연적·영적·내면적 성격이 강하게 부각되고 있다. 신약으로 오면서 하나님의 선의[내용]와 물질적 은택[형식] 사이의 이와 같은 긴밀한 연접 현상은 종지부를 찍는다. 오히려 신약 시대에는 내용(하나님의 선의)만이 극명히 드러나고, 형식(물질적 은택)은 별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신약은 신앙의 자태에 있어 내면과 영적 실상을 현저히 드러내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제 형식은 한 가지로 고정되어 있지도 않고, 내용의 노정을 유도하는 긴밀한 수단이 되지도 않는다. 심지어 신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선의를 충만히 누리면서도 물질적 은택은 전혀 향유하지 못하는 수가 있는가 하면, 물질적 은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향유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선의와는 거리가 한 없이 먼 삶의 모습도 얼마든지 존재한다(마5:10-12) .

7. '세상적인 복'과 '성경적인 복'의 차이
성경이 말하는 복의 원천은 하나님이시다(창1:28,12:3).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쁘신 뜻을 따라 베푸시는 은혜의 선물임을 밝혀 주고 있다. 이것은 복에 대한 동서양의 운명론적 입장이나, 인과응보론적 입장이나. 인본주의적 입장을 모두 배격하는 독자적인 성경적  정의이다.
1) 세상적인 복은 개인의 행복을 이루는 것이고, 성경적인 복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요6:38-40).
2) 세상적인 복은 보이는 복을 강조하고, 성경적인 복은 신령한 복을 강조한다(엡1:3).
3) 세상적인 복은 소유를 원하고, 성경적인 복은 나누는 것을 원한다(행20:35;눅6:38).
4) 세상적인 복은 다스림을 드높이고, 성경적인 복은 섬김을 드높인다(막10:45).
5) 세상적인 복은 고난은 저주이나, 성경적인 복은 고난도 유익이다(시119:71).
6) 세상적인 복은 이 땅에서 끝나고, 성경적인 복은 천국까지 이어진다(마24:31).

8. 잘못 인식하고 있는 '복'의 개념
1) '복'과 '축복'을 동일한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다.
'축복(祝福)'이란 '내가 누군가를 위해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께 복을 비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한국의 기독교계에는 이 말에 대한 이해가 전반적으로 잘못되어 있다. '축복하다'라는 말을 마치 '복 주다'라는 말처럼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말 성경에 보면 이 두 가지 개념이 분명히 구별되어 쓰이고 있다.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사...."(창1:28). -> 하나님께서 사람들(그들)에게 말씀하신 경우이다.
*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창27:4). -> 이삭(나, 내)이 아들 에서(네게)에게 말하는 경우이다.
*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비가 그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창27:27). -> '복'과 '축복'을 구별하고 있다.

2) 성구를 성경 말씀의 뜻과 다른 곳에 사용하고 있다.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꿈을 이루거나 성공과 번영을 기약해 주는 것 같은 성구 내용에 대해서는 엄청난 매력을 느낀다. 그런 경우 인용되거나 회자되는 구절들은 성경의 문맥이나 정당한 해석의 과정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욕망을 부추기는데 사용되고 있다.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8:7). -> 시작 단계에서는 보잘 것 없더라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크게 번성하기를 바란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아니라 발닷이 욥에게 자녀의 죄 문제를 해결하라는 충고의 말이다.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다'는 욕망의 표현이 아니라 바울이 자신의 사도적 임무 수행과 재정 형편 사이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 우리가 가진 꿈과 욕망을 이루어 주십사 하며 끈질기게 매달리면 성취된다는 주장을 내세우는 데 자주 사용된다. 하나님께서는 물론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구할 때만 응답해 주신다(요일5:14).

3) 고난과 환난이 오면 저주로만 생각한다.
고난과 환난은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혹은 징벌로 보여져 있다(삿2:2-4).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고난 중에서 마음을 돌려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때, 고난에서 구출된다(출2:23-25). 그러므로 신앙을 깊게 하는 시련의 의미를 가진다(사53:4-6).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 친히 고난을 받으셨다(막8:31;히2:10). 고난을 견디어 내는 때,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강한 신앙이 주어지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 에 참여하는 희망이 주어진다(고후4:16-18;벧전4:13).  
*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시34:19).
*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약5:13).
*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1:1-3).



 

 

교회 분열을 야기하는 5가지 - Mark Driscoll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내 제자인줄 알 것"이라고 하셨지만, 교회는 너무 자주, 상습적인 다툼과 당파싸움으로 잘 알려져 있죠.
교회 분열이 일어날 때, 서로가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기가 매우 쉽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만약 교회가 분열된다면, 한 개인이 모든 문제와 이슈를 야기하진 않는다 해도, 각 개개인이 분열의 원인이 될 수는 있습니다.

교회 분열을 일부러 계획하고 덤벼드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열은 매우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큰 문제로 커져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스스로가 기도하는 중에 우리 자신들이 분열의 원인인지 아닌지를 시험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기도하며 우리 자신들을 돌아볼 때, 유의해서 보아야 할 5가지 위험요소들을 소개합니다.
아래의 5가지 위험요소들을 기도하면서 읽으시면서, 혹시 해당되는 것이 있다면, 회개하고 기도하며 회복되길 바랍니다.

1. 교만
교만은 매우 추악한 죄이며, 교만한 사람들은 추악합니다. 교회생활에서의 교만은 교회 분열의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만약 당신이 의견내기를 즐기며, 당신의 의견이 신중하게 협의되길 기대하면서, 당신의 의견이 거절될 때, 화가 난다면, 아마도 당신은 교만으로 인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입니다.

2. 이단
이단이라는 단어는 교회 안에서 매우 유행되고 있는 말입니다. 많은 경우,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의견이나 비본질적 요소에서 자신의 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단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건 이단이 아니라 의견충돌일 뿐입니다.
이단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정통기독교 교리에 반하는 내용을 믿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부인하거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가지신 신성과 죄가 없으신 분으로서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지 않는 것등이죠. 이러한 진리들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반드시 믿고 그것을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단이 허용되면, 교회는 분열정도가 아니라 파괴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3. 형식주의
형식과 외식에 치중한 사람들은 법을 만들어서 하나님처럼 행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들은 법을 만들 뿐 아니라, 그 법을 휘둘러서 교회의 당파를 짓는 무기처럼 사용합니다.
그들 개인적 신앙의 확신에서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기보다는, 그들은 도리어 그들과 같지 않는 사람들을 정죄하고 심지어 경멸하기까지 합니다(로마서 14:1-12).

4. 불신
교회 안 성도들 가운데서, 특히 리더들 가운데서 불신이 존재한다면, 교회분열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한면에서, 리더들은 신뢰할 수 있고, 나무랄 것이 없어야 하는 하나님의 명하신 책임을 준수해야 합니다(딤전3:2, 딛1:6). 다른 한면에서, 성도들은 그들의 리더들을 신뢰하여서 존중해 주고 순종해야 하는 하나님의 명하신 의무를 이행해야 합니다(살전5:12-13, 딤전5:17, 히13:7,17).
리더들과 성도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신뢰할 수 있는 상태인지 아닌지를 항상 점검해야 합니다. 최악의 경우, 성도들은 리더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해결책을 강구하기보다는 리더들에 대한 험담과 뒷담화를 늘어놓을 수 있습니다. 결국 더 심각한 불신과 분열을 낳게 되는 것이죠.

5. 전통주의
전통은 전통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닙니다(고전11:2, 살전2:15, 3:6). 하지만, 전통적 방법들이 본래 의도된 기능보다 훨씬 더 추켜 세워지고, 전통적 방법 자체가 기본적인 예배가 되어 버린다면, 그것은 교회를 분열시키는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런 이유없이, 비성경적 전통방식의 변화를 거부한다면, 당신의 전통적 방식 고수가 교회의 분열을 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하나됨을 추구하십시오.
그리스도인들로서, 우리는 교회의 연합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추구하지만, 연합을 만들어내진 못합니다. 하나님만이 하십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에베소서 4:4-6) 예수 안에서, 우리는 연합된채로 창조되었습니다.

연합을 추구함에서, 우리는 반드시 지속적인 변화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유기체적 공동체로 구성된 유기체적 교회안의 한 부분입니다. 마치 우리 각 개개인이 살아있어서 성장하고 변화하여 성숙을 향해 나아가듯이, 그러한 개인이 속한 교회공동체도 변화해야 합니다. 연합을 추구함에 있어서, 우리 교회는 사도바울이 전한 말씀을 유의해서 들어야 합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에베소서 4:2-3) 이 본문에서 가장 핵심은 겸손(Humility)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싸움, 개인적 유익, 혹은 의견등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의 관심은 하나님과 주변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마22:37-40). 그리고 이 가장 큰 계명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교회 분열을 막을 뿐 아니라, 그의 교회를 하나되게 하실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는 비결입니다.

Mark Driscoll, "5 Things That Can Divide a Church"
 



 



 

 



       한 영혼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 강과 바다를 이루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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